제주탐라시대역사 소개
안녕하세요.
제주도호빠입니다.
오늘은 제주도의 탐라시대와 탐라국역사에 대해 한번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주탐라시대역사
탐라국
“ 탐라국은 삼국시대에 들어와서는 백제, 고구려, 신라와 각각 교역한 것으로『삼국사기』등에 나타나고 있다.
특히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660)한 직후에는 바다건너 일본과 중국 당나라와도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탐라국은 삼국시대에 들어와서는 백제ㆍ고구려ㆍ신라와 각각 교역한 것으로 《삼국사기》 등에 나타나고 있다.
특히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660)한 직후에는 바다 건너 일본과 중국 당나라와도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이 무렵 중국의 《신당서》의 기록에는 “용삭 초년(신라 문무왕 원년, 661)에 탐라(耽羅)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그 나라 왕인 유리도라(儒李都羅)가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어 황제를 뵙게 하였다. 그 나라는 신라의 무주(지금의 광주직할시)
남쪽 섬 위에 있다.
풍속은 질박하고 비루해서 옷은 개나 돼지의 가죽으로 만들어 입는다. 집은 여름에는 초가집에서 살고, 겨울에는
굴속에 들어가서 산다. 땅에서는 오곡이 나지만 밭을 가는 데는 소를 부릴 줄 모르고 쇠스랑으로 밭을 일군다.
이 나라는 처음에 백제에 복속하였다가 인덕 연간(663∼664)에 그 나라 추장이 당나라에 들어가 황제를 따라
태산에 이르렀는데, 그 뒤로는 신라에 복속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같은 시기의 기록인 《당회요》 탐라국조에는 “탐라는 신라의 무주 해상에 있다. 섬 위에는 산이 있고 주위는
모두 바다에 접하였는데, 북쪽으로 백제와는 배를 타고 5일을 갈만한 거리이다. 그 나라 왕의 성은 유리(儒李)이고
이름은 도라(都羅)인데, 성황(城隍)은 없고 다섯 부락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들의 집은 둥글게 돌담을 둘러서 풀로
덮었으며 호구는 8천 가량 된다. 활과 칼 및 방패와 창이 있으나 문기는 없고 오직 귀신을 섬긴다. 항상 백제의 지배하에
있었고 용삭 원년(문무왕 1, 661) 8월에는 조공 사신이 당 나라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물론, 이 두 기록은 작자가 직접 제주도에까지 와서 보고 쓴 것은 아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주워 들은 것을 기록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기사 내용에는 그들의 편견도 개재되어 있으리라 생각된다. 어떻든 위 두 기록을 종합해 보면,
당시 제주도의 위치, 명칭, 왕, 풍속, 가축, 성곽, 귀신, 거주지 모습, 무기, 인구 등에 대해 대략을 추측해 볼 수가 있다.
중략…
자료/저작권 정보 자료/저작권 정보
고창석 교수(제주대학교 사학과)
출처 제주도도청
제주탐라시대역사 소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