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성역사인물1

제주 여성역사인물1 소개

안녕하세요.
제주도호빠입니다.

오늘은 제주도호빠와 함께 제주 여성역사인물중 탐라시대와 고려시대의 여성인물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주 여성역사인물1

탐라시대 여성인물

삼신인과 혼인한 벽랑국 세 공주

  • 성명: 삼신인과 혼인한 벽랑국 세 공주
  • 생존기간: 9999 ~ 9999

상세정보

제주 역사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여인들로서, 삼신인과 혼인하여 탐라국의 기틀을 잡고 농경문화를 전수한 인간집단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므로 벽랑국 세 공주는 탐라국의 기원과 연관시켰을 때 건국의 모태가 되었던 제주여성의 역할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벽랑국 세 공주는 땅속에서 용출하여 수렵생활만 영위하던 남성 집단에 오곡(五穀)의 씨와 송아지·망아지를 갖고 들어와
새로운 문화혁명을 일으킨 여성 집단이다.
여기서 여성은 풍요와 생산을 가져다 준 주체로서 제주여성의 생활력과 문화를 전해준다.
제주도의 대표적인 당신화의 주인공 백주또 할망, 제주의 천지창조 설화의 설문대 할망 등에서도 여성의 독보적인
행위들을 확인해 볼 수 있다.

탐라국 개국신화 내용

사람이 살지 않던 아주 아득한 옛날, 세 사람의 신인(神人)이 한라산 북녘 기슭의 땅으로부터 솟아났다. 이들은 모흥굴,
지금의 삼성혈이라는 굴에서 솟아났는데, 맏이를 고을나, 그 다음을 양을나, 셋째를 부을나라 하였다. 그들은 용모가
의젓하고 기품과 도량이 넉넉하고 활달하여 보통 사람들과는 달랐다. 가죽옷을 입고 육식을 했으며, 언제나 사냥을 업으로
삼았으나 가정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라산에 올라가 동해를 바라보니, 자줏빛 안개가 나무 상자를 감싸고 상자는 해변에 떠내려 와 가지 않았다.
삼신인(三神人)이 산에서 내려와 상자를 여니, 그 안에는 새 알 모양의 옥함이 있고, 관대를 갖추고 자주색 옷을 입은 사자가
옥함을 지키고 있었다.
옥함을 여니, 그 속에는 푸른 옷을 입은 처녀가 셋 있었다. 나이는 십오륙 세쯤 돼 보였는데, 얼굴과 태도가 범속하지 않았고,
기품은 그윽하고 얌전한데, 각자 화장을 하고 나란히 앉아 있었다.
옥함 안에는 송아지, 망아지, 오곡의 종자도 있었다. 세 여인이 옥함에서 나온 곳은 온평리 ‘화성개’라는 포구였다.
포구 이름은 이 여인들이 꽃상자 ‘화상(花箱)’에서 나왔다 하여 ‘화성개’라 지었다 한다. 삼신인은 “이 세 공주는 하늘이 우리 세 사람에게 내린 것”이라 하며 기뻐했다. 사자는 고개를 두 번 숙여 절하며 말을 했다. “저는 동해 벽랑국의 사자입니다.
저희 임금님께서는 세 딸을 두셨는데 시집 갈 나이가 되었으나 배필을 구하지 못하여 탄식을 하며 여러 해를 보내던 중에
임금님께서 자소각에 올라 서쪽 바다를 바라보니, 보랏빛 기운이 하늘로 이어지고 찬란한 서광이 한라산 높은 봉우리에
서려 있었습니다. 그곳에 고량부 삼신인이 솟아나 나라를 세우려 하지만, 배필이 없는지라 저에게 세 공주님을 모시고
가라고 명(命)하기에 여기에 왔습니다. 마땅히 혼례를 치르시고 대업을 이루소서.” 사자는 백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사자가 백마를 타고 하늘로 오를 때 생긴 말의 발자국이 지금도 남았는데, 이곳이 온평리 바닷가 ‘황루알’이라는 곳이다.
삼신인은 곧 깨끗한 ‘희생’을 바쳐 하늘에 제사 지내고, 온평리에 있는 연못에서 목욕재계하고 혼례를 올려 ‘흰죽’이라는
굴에서 살았다. 사람들은 고량부 삼신인이 결혼한 연못을 ‘혼인지’라 불렀다.
결혼하여 동굴에서 살던 이들은 나라를 세우기 위해 샘물이 맑고 비옥한 땅을 구했고, 땅을 구하자 활을 쏘아 화살이 가는
방향의 땅을 나누어 가졌다. 이들이 활을 쏘았던 곳을 ‘활쏜디왓’이라 하는데, 제주시 화북동에 있는 지방기념물 ‘삼사석’이
그곳이다. 활을 쏘아 고을나가 좌정처로 정한 곳을 일도, 양을나가 정한 곳을 이도, 부을나가 정한 곳을 삼도라 했다.
그로부터 살림을 차려 오곡의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지었으며, 가축을 기르니 날로 풍요를 얻어 마침내 인간 세상 ‘탐라국’을
이루게 되었다.

고려시대 여성인물

정씨여인

성명: 정씨여인

생존기간: 9999 ~ 9999

인물상세정보

열녀 정씨는 고려 공민왕 때 제주여인이다. 그녀는 목호(牧胡) 석방리보개(石邦里甫介)의 처로서 남편이 공민왕 23년에
일어난 목호의 반기와 이의 평정 와중에 죽었다. 그때 그의 나이 20세였다. 정씨는 사별한 목호 남편 사이에 자식이
없는데다가 젊고 아름다웠다. 그래서 탐라에 온 고려의 안무사와 군관들이 강제로 정씨에게 장가들려 하였다.
이에 그녀는 죽기를 각오하고, 칼을 당겨 스스로 목을 찌르려 하여 강제 결혼을 막았다. 이후에도 정씨는 늙을 때까지
재혼하지 않았다. 조선 태종 13년(1413) 안무사 윤임은 정씨가 친족들도 재가를 권하였으나 끝내 듣지 않고 절개와
부도(婦道)를 지켜서 70세에 이르렀음을 왕에게 아뢰어 열녀로 정표되었다

자료출처 : 박찬식 (제주대학교 사학과 강사)

출처 제주도도청

제주 여성역사인물1 소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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