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성역사인물3

제주 여성역사인물3 소개

안녕하세요.
제주도호빠입니다.

오늘은 제주도호빠와 함께 제주 여성역사인물중 조선시대의 여성인물 강사철 아내 고씨와 홍윤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주 여성역사인물3

국지

성명: 국지 (國只,, 날아기)

생존기간: 9999 ~ 9999

인물상세정보

열녀 국지는 품관 홍질의 첩인데, 14세에 시집을 가서 남편이 죽자 스스로 죽기를 맹세하였으나 주위에서 만류하여 죽지를 못했다. 그러나 그의 재색을 탐내는 자가 강폭하게 겁탈을 하려고 하자 곧 남편의 형 집으로 거처를 옮겨 평생을 고독하게 수절하였으므로 인조 2년(1624) 5월에 목사 민기가 아뢰어 정표되었다. 비는 조천면 신촌리에 있다.

김천덕

생존기간: 9999 ~ 9999

인물상세정보

조선 선조 때의 열녀이다. 애월읍 곽지리의 시노비 연근의 아내이다. 선조 때 제주판관 조인후가 제주목사 임진에게 천덕의 효열을 알리자 마침 제주에 왔던 아들 임제가 『김천덕전』을 지어 목사가 조정에 보고하여 1577년 가문에 정려가 내려졌다. 김천덕은 재색이 있어 결혼한 지 20년 만에 남편이 진상물을 싣고 출항 중 화탈도와 추자도 사이에서 침몰되어 익사하였다. 천덕이 3년상을 치르고 삭망과 절기마다 있는 제사 때에 화탈도를 향하여 하늘에 호소하고 가슴을 치며 발을 굴렀다. 그 뒤 한 유배인이 그를 꾀었으나 듣지 않았다. 그는 부친에 대한 효성도 지극하여 곽지 사람들은 그의 효성에 감복하였다. 또 명월방호소의 관리가 권세를 믿고 김천덕의 부친 김청에게 간청해 허가를 받아냈으나 천덕은 통곡하여 목을 매었으나 다른 이의 눈에 띄어 목숨을 구했다. 그러자 두발을 자르고 미친 척하니 천덕의 부친도 강요할 수 없었다. 백호 임제가 1577년(선조 10) 문과에 급제하고 아버지인 제주목사 임진에게 알리려고 제주도에 와서『김천덕전』을 지었으므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제주 여성역사인물3 김만덕

생존기간: 1739 ~ 9999

인물상세정보

김만덕은 1739년(영조 15년) 구좌읍 동복리에서 김응열의 2남 1녀 중 외동딸로 태어났다. 1751년 돌림병으로 인해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자 기녀의 수양딸이 되었으나 20세에 기녀 생활을 청산하고 객주업에 손을 댔다.
객주는 여관 구실도 했지만 물건을 위탁 판매하는 중간상 역할을 하던 곳으로, 그녀는 상업적 재능을 발휘하여 50대에
이르러 굴지의 재력을 발휘하였다. 장옷으로 얼굴을 가리고서야 바깥출입하던 사회에서 그녀의 성공은 이례적인
것으로서 조선 역사상 가장 주목받아야 할 여성사업가가 아닐 수 없다.
1794년(정조 18년) 무렵 거듭되는 자연재해로 제주도민들은 심한 고통을 당하게 되었다. 이때 김만덕은 사재를 털어
육지에서 식량을 사들여 주민들을 구호하는 데 재물을 아낌없이 내놓았다.
이러한 김만덕의 선행이 조정에 알려졌고, 정조는 그녀를 궁궐로 불러들였다. 이때 평민으로서는 예궐할 수 없으므로
왕은 김만덕에게 내의원의 의녀반수(醫女班首)의 직함을 제수하게 되었다. 이어서 영의정 채제공과 선혜청의 배려로
조선의 명산인 금강산을 유람하였다. 김만덕의 전기는 1797년(정조 21년) 번암 채제공에 의해 씌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박제가·정약용·이가환 등 당대의 쟁쟁한 실학자들이 김만덕의 선행을 기리는 한시를 남기기도 했다.
김만덕은 출륙금지령이 내려져 있던 변방 제주섬에 사는 천민 신분의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사·농·공·상 중 말업(末業)으로
천시되던 상업을 통해서 거부(巨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에 재산을 환원함으로써 나라도 하기 힘든 구휼 활동을 했다.
그녀는 변방·여성·천민·상업이라는 최말단의 조건에서 국가·남성·양반·관료도 하기 힘든 구휼 활동을 했다.
또한 출륙금지령 하에서 제주 여성으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육지 나들이뿐만 아니라 임금 알현, 금강산 구경까지 이루어낸
최고 경지의 인간사를 경험했다.
제주여성 김만덕은 제주 역사의 표상이며, 21세기 제주는 김만덕의 정신을 이어받는 문화적 적응성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우리 역사에는 후세에 길이 남아있는 여성상들이 있다. 신사임당·유관순 등이 대표적일 것이다.
그러나 김만덕은 또 다른 여성상, 즉 나눔과 봉사의 정신을 실현한 여성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녀는 자기를 묶는
봉건적 신분의 굴레에 도전했고, 상도(商道)의 모범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불행에 처한 이웃을 위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인본주의자였다.
따라서 김만덕의 베풂의 정신을 계승·발전시키는 일이야말로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출처 제주도도청

제주 여성역사인물3 소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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